최근 미술과 아트에 관심이 많이 생기면서 다시 읽어보고 싶은 발터 벤야민의 책들,
생각보다 시간이 별로 없어서 다시 읽어보지는 못하고 이전에 정리해두었던 서평 글을 다시 올려본다.
올리면서 나도 조금 더 정리가 되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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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터 벤야민과 아우라에 대하여 :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 작품을 읽고
발터 벤야민은 대중문화에 대해 논한 것과 동시에 문자 문화에서 이미지 중심의 시각 문화로 전환되는 기술 재생산 시대에서 예술 작품의 의미가 변화하는 바에 대해 분석한 철학자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발터 벤야민은 대중문화의 긍정적 가치를 발견하고, 그 발전 가능성을 모색한 최초의 미학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먼저 그가 기본적으로 예술에 대해 가치고 있던 전체를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그는 전통 미학에 대해 비판적인 태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둘째, 마르크스주의자답게 예술의 생산수단의 변화에 집중했습니다. 이를 좀 더 풀어 설명하자면, 그는 예술 작품의 생산 수단이 변화하면 예술 작품 자체가 변화하는 것과 더불어 예술 작품의 수용 방식, 작품이 가진 가치의 기능 등 예술 작품을 둘러싼 모든 것들이 전반적으로 변화한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때문에 셋째로, 그는 기술 재생산 시대의 예술 작품에 대한 고찰과 동시에 그 예술 작품의 지각과 수용의 관점도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벤야민은 당시의 사진, 영화, 라디오, 텔레비전 등의 아날로그 대중매체가 등장하던 시대를 기술 재생산 시대라고 정의 지었는데, 이 시대의 특징이 바로 <아우라의 몰락> 이라고 말합니다. 발터 벤야민이 말하는 아우라는 한마디로 정의되기는 어렵지만, 예술 작품의 원본성, 진품성, 일회성으로부터 나오는 예술 작품 자체의 독특하고 권위적인 분위기를 의미합니다.
그는 아우라가 무너지기 이전의 전통 예술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합니다. 전통적 예술 작품은 아우라로부터 생성된 자신의 권위를 보존하면서 주술적이고 종교적인 기능을 수행하게 됩니다. 때문에 예술은 종교적이고 제의적인 영역에 존재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렇게 종교적 기능과 연결된 전통적 에술 작품은 존재 그 자체보다 어떻게 보여지는가, 즉 대중이 얼마나 숭고하게 느끼는가가 중요해지게 됩니다. 때문에 에술 작품은 누구나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숨겨놓고 중요한 사람들끼리만 보는 보물같은 존재가 됩니다. 누구나 볼 수 있으면 그 예술이 숭고한 가치를 기닐 수 없으니까요. 하다못해 복제품이 존재하더라도, 이 복제품은 언제나 원본보다 평가절하됩니다. 때문에 대중은 예술을 만나기 힘들 뿐더러, 어쩌다가 만나더라도 그 권위 앞에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전통 예술은 결국 대중에게 소외감을 안기는 것이지요.
벤야민은 대중매체의 등장으로 기술 재생산 시대를 맞으며, 전통적 예술작품의 아우라가 몰락했다고 이야기합니다. 대중매체를 통해 전통 예술이 가진 일회성은 반복성이 되고, 지속성은 일시성이 되는 전환을 맞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우리가 붕괴된 예술을 바라보며, 당시의 많은 학자들은 예술이 종말을 맞았다고 이야기하기도 했지만, 벤야민은 이 아우라의 붕괴를 예술의 새로운 출발이라고 말합니다. 벤야민은 예술이 아우라를 벗으며 정치적 기능을 획득하게 되었다고 말하는데, 이는 뒤에 사진과 영화에 대한 설명에서 더 자세히 써보겠습니다.
벤야민은 마르크스적인 관점에서 새로운 매체의 등장이 곧 예술의 새로운 생산 수단이 되었고, 새로운 생산 수단은 예술 그 자체를 변화시킬 뿐 아니라, 인간의 지각 경험이나 미적 체험도 변화시키며 예술의 수용 방식과 그 작품이 가진 가치의 기능 등 예술 작품을 둘러싼 모든 것들을 변화시킨다고 바라보았습니다.
가장 먼저 바라볼 새로운 매체는 사진이었습니다. 벤야민은 사진을 통해 이미지에 대한 대중의 민주적 접근 가능성의 확대를 확인했습니다. 단순히 사진이 예술인가 아닌가에 관심을 가지기 보다, 예술 작품의 수용자 관점에서 사진이 가지고 온 새로운 변화에 집중한 것입니다. 즉 예술로서의 사진이 아니라 사진으로서의 예술에 관심이 있었던 것이지요. 사진기를 통한 예술의 기계적 재생산 가능성은 예술 작품을 향한 민주적인 접근 가능성의 확대를 의미합니다. 즉 전통적인 예술 작품으로부터 소외를 느끼던 대중은, 가까이 할 수 없었던 예술을 가까이 하게 되고 때문에 예술이라는 것이 가진 신비감으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벤야민은 이렇게 외적인 요소로부터 자유로움을 느낄 때 그 대상을 비판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고 바라보았습니다. 즉, 에술에 대한 민주적인 접근 가능성이 곧 예술에 대한 주체적인 비판을 가능하게 한다고 본 것이지요.
다음으로 등장한 새로운 매체는 영화였습니다. 벤야민은 영화를 통해 수용자의 이미지 수용 방식의 변화가 발생한 점에 주목합니다. 영화는 모두들 아시듯, 촬영을 할 때 프레임을 이용하여 사실을 크롭하고, 편집을 통해 시공간을 초월하거나 현실을 재구성합니다. 이러한 논리저인 시공간의 해체와 재구성은 관객에게 색다른 미학적 체험을 가능하게 하는데, 벤야민은 이러한 심미적 체험이 영화에 완전한 몰입을 하는 것을 방해한다고 보았습니다. 완전한 몰입이 방해받았다는 것이 부정적이게 들릴 수 있지만, 좀 더 이해해보면 오히려 긍정적인 내용인데요. 전통적 에술인 연극은 관객이 완전히 몰입하고 집중할 것을 요구합니다. 때문에 예술을 대할 때 정신을 집중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대하게끔 유도한다는 것이지요. 반면 여오하는 자신의 고유한 형식으로 분산적이고 촉각적인 지각 방식에 호소하게 되는데, 이는 예술을 오락적인 요소로 대할 수 있게 유도합니다. 전통적인 예술인 연극을 감상하는 관객은 스스로를 주인공과 동일화하기 때문에 비판할 수 없이 하나가 되어버리는 반면, 대중영화인 영화는 정신오락적 분석적 지각을 통해 관객이 주체적으로 능동적 활동을 가능하게 하고, 비판 또한 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
여기서 아까 앞에서 잠시 언급했던, 예술이 정치적 기능을 획득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벤야민은 아우라를 벗은 대중예술이 대중에게 비판의식을 심어주고 대중을 계몽하며 그들 마음속에 잠재되어있는 혁명의 도화선에 불을 당겼다고 보았습니다. 즉, 대중이 대중예술을 통해 소수의 손에 독점되었던 예술이 대중적 접근이 가능해졌고, 이를 통해 비판적인 사고가 가능해졌으며 때문에 대중을 더이상 멍청하다고 말할 수 없게 되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때문에 대중 예술은 결코 싸구려 유희가 아니며, 대중 예술은 우리 스스로가 혁명 주체가 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독려하는 자극제가 된다고 벤야민은 이야기합니다. 대중 문화의 효과들로부터 집단적 깨어남을 강제할 수 있었고, 혁명적 정취를 고취하고 형성할 수 있다고 스스로 믿었던 것이지요. 이러한 사실로 바라볼 때, 벤야민은 대중 예술의 긍정적 가능성을 바라본 최초의 미학연구자라고 일컬을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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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터 벤야민과 아우라_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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